진화속도, 인류의 4000만배…대륙간 이동, 확산 속도 빨라져
조류서 사람으로 전이…사람끼리 전이 쉬워지면 세계 대재앙+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는 1981년 처음 환자가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28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1995년 세 가지 약을 동시에 쓰는 항바이러스 요법이 개발되면서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조절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전염병을 극복하고 돌아서면 언제나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하고 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백신이나 치료법 개발 속도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는 인간보다 4000만배 빠르다. 게다가 동물의 몸에만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옮겨오면서 신종 전염병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980년대 991건 발생했던 전염병은 1990년대에는 1924건으로 늘었고, 2000년대에는 3420건으로 급증했다. 이 중 1818건이 동물을 통해 전염된다.
과학자들은 이제 페스트 못지않은 새로운 \'판데믹(pandemic.전염병의 대유행)\'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하나로 연결된 지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판데믹에 우리는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전 세계를 위협할 가장 시급한 안보 현안은 바로 전염병\"이라고 지적했다.
비행기를 타면 지구 반대편에 반나절이면 도착한다. 사람이 옮기는 전염병은 순식간에 지구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밀도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생겨나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감염될 수 있다.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는 도쿄 시내에서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조류인플루엔자 환자 단 한 명이 발생하면 2주 만에 일본 전역에서 35만명이 감염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14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총회에서는 \"전 인류가 판데믹에 휘말리는 데에는 7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전염병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AI 바이러스 \'H7N9\'이다. 지난겨울 한국에서 발생했던 AI 바이러스는 H5N6였다. 전염 속도는 빠르지만 사람은 감염되지 않는다. H7N9은 다르다. 올해만 500명이 넘는 중국인이 조류를 통해 H7N9에 감염됐고 감염된 사람의 88%가 폐렴으로 이어졌다. 감염자의 41%가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치사율도 높다.
H7N9의 유일한 약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잘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까지는 그럴 뿐\"이라고 말한다. H7N9이 변이를 일으켜 감기처럼 순식간에 전염성이 강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완벽한 검역은 불가능하다. 또 검역을 강화하면 경제적 피해도 생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3년 발생한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는 사망자가 800명이 채 되지 않았으나 교역 중단과 교통 통제 등으로 540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세계은행은 새로운 판데믹이 발생하면 경제적 손실이 4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경제가 파탄 난다는 것이다.
판데믹을 막을 가장 확실한 무기는 예방용 백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비롯해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백신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재단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신종 전염병에 대항할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TI)\'을 출범시켰다. 앞으로 5년간 10억달러가 백신을 개발하는 기업과 과학자들에 지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