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는 생명을 책임지는 파일럿 같아
\"10대서 2천대 택시로..세계 최고 서비스회사
\'재일동포 성공신화\'로 잘 알려진 일본 MK택시의 창업주 유봉식 회장(사진)이 향년 88세로 지병인 흡인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고인은 1928년 경상남도 남해 출신으로 1943년 일본으로 건너와 대학을 중퇴한 후 1957년 주유소 사업을 하다가 1960년 10대의 택시로 미나미택시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택시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가쓰라택시를 인수한 유씨는 1977년 두 택시회사를 합병하면서 회사의 머릿글자를 따 현재의 MK택시를 만들었다.
MK택시는 \'택시요금엔 친절과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며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장애인 우선 승차.자발적 요금 인하 등을 통해 일본 택시업계의 풍토를 바꿨다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 타임지는 1995년 MK택시를 \'세계 최고의 서비스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봉식 회장의 경영철학서 “택시 운전사는 파일럿과 같다. 우주보다 더 무겁고 큰 생명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유봉식 회장의 이 같은 지론은 오늘의 MK택시가 있게 한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유 회장은 당시 은행 지점장에 필적하는 12만 엔 수준으로 운전사들의 월급을 전격 인상했다. 물론 수지가 맞을 리 없었다. 주위에서는 몇 달 안에 망할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그는 매출액 증대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택시는 손님이 타건 안 타건 드는 비용이 일정하기 때문에 매출액을 늘리면 수익이 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유 회장은 단거리라도 고객이 손을 들면 반드시 태우라고 운전사들에게 호소했다.
또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운전사의 자택에 차고를 두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교통 당국이 제재를 걸고 나섰지만 1년간 싸운 끝에 마침내 허가를 얻어냈다.
유 회장은 “고객에게 친절하기 위해 운전사들을 잘 대우해 주는 것이 요체였다”며
“서비스 혁신 아이디어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긴키 산업신용조합\' 회장직도 맡았고, 10여년 전 택시회사 경영은 세 아들에게 맡겼다. 3년 전 교토의 한 신용조합을 사들인 뒤 교포계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도산하자 2002년 3곳을 추가로 인수했다.
MK택시는 교토 1,200대의 택시를 비롯, 동쿄, 오사카 등 총 2,000대의 택시가 운영 중이다. 또 MK석유, MK산업 등 10여 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MK그룹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MK는 소비자가 뽑는 이미지가 좋은 회사로 일본의 세계적인 그룹인 미쯔비시 상사, 니혼전기, 혼다 등과 나란히 랭크되는가 하면, 전국 대학생 앙케이트 조사결과 취업하고 싶은 기업 4위로 꼽히기도 했다. MK택시 설립 과정 등에 대한 고인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TV드라마로 제작됐다. 2004년 고향인 경남 남해를 찾았을 때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