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IT업체 팀장으로 일하던 50대 중반 A씨는 2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의 과중한 업무량을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하나둘 켜졌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A씨는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아내의 동의를 얻어 며칠 후 전격적으로 사표를 냈다.
하지만 몇 달 후 A씨는 자신의 퇴사를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할 것이 없었다. 만날 친구도 없고, 딱히 즐길 취미도 없었다. 부인은 늘 스케줄이 넘쳐나지만 A씨는 외롭다. 퇴사를 하면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는데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저마다 스케줄로 바쁘다. 대화를 하고 싶어 다가가면 “정작 아빠가 필요할 때는 없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세요?”라며 귀찮다는 듯 꽁무니를 뺀다.
사례 2
50대 중반 B씨는 중견업체 CEO다. 친구들은 다 B씨를 성공한 인생이라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B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늘 고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내 마음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제는 좀 편안하게 놓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요. 내가 이 정도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으니 그나마 사람들이 만나주지, 이 자리를 떠나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외면할 겁니다. 아내도 나를 귀찮아하고….믿을 만한 친구도 없습니다. 다 일 때문에 만납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관계빈곤에 시달린다. 젊은 시절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50대 중년남성의 관계빈곤 문제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2013년 한 해 동안 고독사한 사람은 서울에서만 모두 2343명. 하루에 6명꼴로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 성별 고독사 비율을 보면 더 충격적이다. 서울 지역 남성의 고독사 비율이 여성보다 무려 8.4배나 높았다. 통계에 따르면 가족들 사이에 묻혀 바쁠 것 같은 50대 남성의 고독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 남성의 관계빈곤은 유독 심각하다. “만약 당신이 곤경에 처해 도움받기를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답한 한국인은 OECD 36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한국의 50대 중년남성은 불쌍한 세대다. 죽도록 일만 했는데, 은퇴 시점에 와서 보니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 정서적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으니 대화를 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한국 남자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약하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은 따로 또 같이 보내는 법을 일찌감치 훈련받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고 참아내는 법을 체득한다. 특히 50대 이상 가장에게 집은 하숙집 같은 경우가 많고, 아내나 아이들과 대화가 원활한 경우가 거의 없다.
중년은 ‘제2의 성인기’
전문가들은 ‘중년’이라는 시기에 주목한다. 인류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100세 시대의 중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행복한 중년 이후를 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관계’다. ‘스몰 토크(small talk)’가 중요하다. 말 그대로 ‘작은 대화’, 흔히 말하는 수다다. “이제는 작은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며, 그 음식을 누구와 나눠야 행복한지 등이다. 스몰 토크는 정서적으로 중요한 대화다. 그래서 여자들이 건강한 거다.”
스몰 토크의 대상은 누구라도 좋다. 아내도 좋고, 친구도 상관없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하면서 마음 편히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 이 작은 노력이 중년 이후 관계빈곤에 시달리지 않는 최고의 처방전이자, 나아가 은퇴 이후 수십 년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