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현동에는 아현산업정보학교라는 고교가 있다. 이 고교의 방승호 교장(56)에겐 \'호랑이 탈 쓴 선생님\', \'준연예인\', \'영업사원\'이란 별명이 있다. 실제 호랑이 인형 탈을 쓴 채 학교를 돌아다니고, 음반을 다섯 장이나 낸 가수이며, 아이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교장실에 놀러오라\"고 \'영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6일 다섯 번째 저서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펴내는 데 이어 \'아현동 아이들\'이란 노래가 실린 여섯 번째 음반을 낼 예정이다.
방승호 교장의 스토리는 최근 1-2년간 한국의 교육계 인사들 중 언론들이 가장 많이 보도하고, 또 인기가 가장 많은 교사 중 한명이다. 일간지, 잡지는 물론, TV방송마다 그를 앞다투어 다루었고, 초청강연자로 몸이 열개여도 모자를 지경이다.
학생들에게 방승호 교장은 \"캐릭터 탈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 \"운동장에서 선글라스 쓰고 기타 치던 사람\" \"입학식 엄청나게 빨리 끝내 준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의 입학식에서 방 교장은 연단에 올라 \"여러분, 제가 교장 방승호입니다. 음반을 5집까지 낸 가수예요\" 하고 말한 뒤 기타를 치며 자신의 노래 \'노 타바코(No Tobacco)\'를 부르고 내려왔다. 그것이 입학식의 전부였다.
\"내 좌우명은 먼저 뻥, 후에 조치”
방 교장의 좌우명은 \'선(先)뻥 후(後)조치\'다. 아이들에게 뻥 먼저 쳐놓으면 수습하려고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 내고 음반 낸 것도 아이들한테 허풍 먼저 떨어놓고 그 약속 지키려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가 탈을 쓰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2010년쯤 인문계 고등학교에 발령받아서 교실을 쓱 둘러보는데 한 반의 아이들 절반이 엎드려 자는 거예요. 선생님들한테 왜 안 깨우느냐고 물었더니 깨우면 애들이 덤빈대요. 피곤한데 왜 깨우느냐, 인권 모독이다 하면서요. 머리가 복잡해지기에 수첩에 적어두고 해결책을 며칠간 고민했어요. 어느 날 학교 근처 지하철역에 이벤트 회사가 있는 걸 발견하고 들어가서 호랑이 탈을 봤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 회사에 전시해둔 호랑이, 말, 외계인 같은 인형 탈을 싹쓸이했죠.\"
그 후 방 교사는 창피를 무릅쓰고 학교에서 탈을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선생님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 사진 찍어요\' \'선생님 나도 한번 써볼래요\' 라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탈이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나 보다.
\"지루할 때 되면 탈 쓰고 나타나는데 잠잘 새가 있겠어요(웃음). 전교생 1000명 중 지각생이 100명인 학교에도 근무했어요. 아침에 한 뭉텅이 늦고, 점심에 한 뭉텅이 오고, 저녁에는 오는 애 가는 애 섞여 있고. 아침 8시에 탈 쓰고 지하철역 앞으로 나갔죠. 2주 정도 그렇게 하니까 지각생 수가 100에서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어요. \'8시까지 학교 가면 괴짜 교장 쌤 볼 수 있다\' 소문이 난 거죠.\"
방 교장이 전에 근무하던 학교가 중랑구에 있는 중화고등학교였다. 서울에서 학교 폭력 발생률 1위인 학교였는데, 발령을 받고 첫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 얼굴이 속 썩고 힘들어서 인지 모두 검었다. 그런데 방 교사는 7개월 만에 학교 폭력 \'0\'으로 만들었다.
그의 비법은 재미다. 우선 학교 전체를 재밌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 쉬는 시간에 교실마다 돌아다니면서 문을 살짝 열고 머리만 빼꼼 집어넣고 \'굿모닝, 내가 누구게? 나 교장 쌤이다\' 하고 나온다. 그렇게 매일 전 교실을 다 돌면서 2주 정도 교실을 다니면 그의 얼굴이 다 알려지고 그 뒤에는 탈 쓰고 돌아다니고 명함도 돌렸다.
교장 명함을 만들어 언제든지 교장실에 찾아오라고 한 것이다. 명함 한장 한장을 학생들 손에 쥐여주고 \'교장실에 놀러 와라, 초코파이 줄게\'라고 꼬시면서 준다. 고객을 모시는 마음으로, 영업을 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했다. 죠.\"
그의 명함 한쪽 면에는 \'모험상담가·교장 방승호\'와 주소·연락처가, 반대쪽에는 \'가수 방승호\'와 그의 노래 제목 5개가 적혀 있었다. 그는 \"교장실에 오면 초코파이와 초콜릿, 커피는 무한 리필\"이라며 \"손님 한 명한테 잘하면 소문이 금방 나서 친구를 데리고 온다\"고 말했다.
그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상을 휩쓸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3년 그가 근무하던 서울 중화고등학교는 서울시 전체에서 학교 폭력 발생률 1위인 학교였지만 그가 부임한 뒤 학교 폭력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교육부로부터 학교 폭력 예방 우수학교로 꼽혔고 교육청에서 뽑는 금연 활동 우수학교로도 선정됐다. 현재 근무 중인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재작년 그가 부임할 당시 학생 흡연율이 40%에 달할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부임한 뒤로 교내는 물론 학교 근처 반경 50m에서 담배꽁초가 한 개도 발견되지 않는다. 작년 12월엔 학교 흡연 예방 사업 우수학교로 꼽히며 보건복지부 장관상까지 거머쥐었다.
그에게 교육이란 그냥 아이들이랑 놀면 된다는 것이다. 노래하고 수다 떨고 팔씨름하고 발등 밟고 그러면서 노는 것이다. 재밌는 일이 생기면 아이들 자존감이 올라가고, 학교 생활이 재미있으면 아이들이 안 싸우고 담배도 안 피우게 된다.
그는 말한다. “처음에는 학교와 학교 근처에서 안 피우다가 나중엔 끊게 돼요. 고등학생이어도 아직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에요. 끊을 수 있는 힘을 키워주면 금방 바뀝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담배를 배우는 이유는 대부분 학부모 때문이 많다. 부부지간 사이가 안 좋으면 불안함이 아이들 마음에 파고들고, 부모가 다투는 걸 보면 두려움이 생기고 자신이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낀다. 그러면 친구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런 친구가 만약 담배를 피우면 자기도 담배를 입에 대는 것이다.
방 교장은 학생들 지도에 대해서…지도라는 표현을 안 좋아한다.
\"지도 안 해요. 같이 놀 뿐이죠. 행복과 재미가 뭔지 알고 느끼면 아이들은 금방 바뀌어요. 담배를 딱 끊게 못 하더라도 일단 재밌는 기억을 만들어주려고 해요.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거죠.\"
가끔 피곤할 때가 있는데…그는 피곤하면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옳기 때문에 네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방법을 사용하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생기는데, 조금이라도 그런 방법을 쓰면 상대가 단박에 알아차린다고 한다.
그러면 곧바로 마음을 닫아버리고, 방교장도 피곤하고 학생도 피곤한 날이 된다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나 양교장은 “어른들의 생각을 주입하면 백전백패한다”고 강조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도 상대도 나도 절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
방 교장 역시 오래 전에는 아주 고집 세고 괴팍한 사람이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얼굴이 찌푸려지면서 표정이 다 드러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예전엔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불쑥 화부터 냈는데 이제는 \'내가 화가 났구나\'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그러면 당장 화를 내지 않고 넘길 수 있는 힘이 생기고…사실 그 순간만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대부분인데, 그는 아이들 덕분에 자신의 팔자를 바꾸었다고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