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으로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6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를 의심하는 첫 폭로가 나왔다. 이후 그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9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이미 사극, 현대극 등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명의 최순실이 화면에 나타났다.
배우 고현정이 연기했던 MBC 사극 ‘선덕여왕’의 미실은 정통성 있는 권력을 부인하고 스스로 왕좌에 오르려 애쓰는 인물이다. 자신의 정체를 간파하고 제거하려는 진흥왕이 죽자 본격적인 야욕을 드러낸다. 색공술을 과시하며 주변 사람들을 홀리는 미실은 주술에도 기댄다. 김유신을 회유하려던 미실이 하늘의 뜻을 상징하는 단어를 쓰고 김유신에게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합니다”라며 야릇한 미소를 흘리던 장면은 작금의 상황과 맞닿아 소름 돋게 한다.
미실이 실수를 범한 부하를 베며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고 내뱉던 모습은 비선 실세 의혹을 제기하며 현 정권에서 직언을 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잘려나가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미실이 숨을 거둔 진흥왕을 두고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하셨습니까. 미실의 시대이옵니다”라고 외치던 장면을 기억하는 대중은 ‘순실의 시대’라고 패러디하며 현 세태를 비틀고 있다.
이 외에도 사극 속에서는 유독 많은 ‘최순실 닮은꼴’이 등장한다. SBS ‘여인천하’에서 강수연이 연기했고, MBC ‘옥중화’에도 등장한 정난정이 대표적이고, 장희빈과 장녹수 등이 왕을 농락하며 정세를 어지럽힌 역사 속 최순실로 그려졌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후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밀회’가 새삼 주목받았다. 이 드라마에 최 씨의 딸인 정유라와 이름이 같은 조연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의 행보가 실제 정유라와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밀회 속 정유라는 피아노를 배웠지만 대학에 진학할 실력을 갖추진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능력 있는 엄마 ‘백 선생’이 있다. 투자분석가로 포장된 그의 진짜 직업은 역술인. 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백 선생의 부탁으로 정유라를 신입생으로 입학시켜야 할 상황에 대해 후배 교수들은 “너무 하지 않냐, 저런 애를 어떻게…”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어렵게 입학했지만 학업은 뒷전인 딸의 학점을 챙기기 위해 백 선생은 로비를 시작한다. 현실 속 정유라의 입학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본인의 전공과 상관없는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챙긴 것과 묘하게 겹친다.
대중은 이미 만났던 최순실들의 최후를 알고 있다. 미실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고, 백 선생은 딸과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