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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ommunity



9년간 치매 엄마 위해 밥 해먹인 블로그 요리왕 '할배' [ Korean-Community]
mason (16-12-06 07:12:52, 100.2.20.40)
‘선조들은 부모가 죽으면 3년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나는 살아서 9년째 하고 있다. 징글맘과 지내는 처음 3년은 그냥 뭣 모르고 살면서 하였고, 다음 3년은 지옥의 투쟁을 하며 고통스럽게 보냈다. 지금 3년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채 모든 것을 추월한 득도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정성기의 9년간의 밥상 일기 ‘나는 매일 엄마와 밥 먹는다\' 중에서. 조선일보는 스머프할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정성기 씨(65세)가 94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얘기를 특집으로 꾸몄다. 그 이야기를 요약해본다.
그냥 모신 게 아니다. 쌀가루크림수프, 간장게장, 물김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로 삼시 세끼 극진한 밥상을 차려내며. 그 세월이 9년 째다. 아들은 어머니를 ‘징글맘\'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요리 100개만 해주고 끝내리라던 작심이 508개까지 이어지자, 아들은 밥상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 먹는다\'.
대책없이 뻔뻔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니는 에미 덕에 서양 요리, 청요리, 일본 요리도 배웠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 고마워해라.”고 호통을 치고, “장조림 국물이 없구나. 내가 준 돈으로 뭐 했니?” 준 적도 없는 돈타령을 한다. 숟가락에 올린 굴비를 까먹고 “니는 왜 굴비를 안 주냐?”고 다그치다, 금세 “내가 너무 먹지? 식탐만 살아서 큰일이다.” 미안해한다.
모자는 부천 소사구 송내의 20평 남짓한 아파트에 둘이 산다. 널브러진 이불, 휠체어, 속옷 보따리, 1인용 탁자…
그는 오남매의 맏이다. 치매를 앓다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에 대한 후회가 컸던 터라, 형제들을 대표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 간병을 맡았다. 가족이 있는 보문동 집을 나서 어머니가 계신 부천 아파트로 트렁크를 끌고 올 땐, 길어야 1년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2008년, 그의 나이 57세였다.
“처음에 어머니 변이 까맸어요. 의사들이 6개월 넘기기 힘들다고 했죠. 돌아가시기 전에 밥 한번 제대로 해드리자 해서 시작한 거죠. 그런데 그 밥을 드시고 점점 기운을 차리셨어요. 의사들이 다들 기적이라고들 해요.”
노인에게 ‘식탐\'은 살고 싶다는 의지다. 새벽밥을 안치고, 대소변 빨래를 하고 간식을 챙기고 잠시 깜빡 졸 새도 없이, 모친은 “배고프다, 밥 다고! 밥 다고!” 노래를 했다.
“어머니가 오직 저만 원하세요. 지금도 식구들 오면 제가 어머니 말을 통역해야 해요. 아내는 저한테 고마워하죠. 정신 온전하실 때도 어떤 며느리도 비위를 못 맞췄어요. 아침이면 “이년아! 해가 똥구멍에 떴냐?” 소리부터 지르셨어요. 누가 대신해줄 수가 없어요.”
먹고 싸고 성내고 사랑하고... 그 지지고 볶는 모양을 인터넷 블로그에 연재한 지 9년. 사람들은 매일의 메뉴와 따뜻한 하소연을 담은 그의 효도 일기에 열광했다. 스머프할배라는 별명은 자동 검색이 될 정도로 블로그의 유명 인사가 됐고, 요리에 관한 한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명답을 내주는 척척박사로 통한다. 하루에 달리는 공감과 응원의 댓글만 5백 개. 전국 각지에서 자전거 헬멧이니 프라이팬이니 음식이니 ‘구호 물품\'이 답지한다.
“안 그랬으면 젊은 날 광고한다고 날뛰던 놈이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버텼겠어요. 저는 블로그에 이것저것 사는 모습 글로 흥얼거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보시는 분들은 “저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하면서 안도를 하시죠. 부모님 가시고 효도 못 하신 분은, 또 제 노동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세요.”
처음엔 된장찌개, 김치찌개나 하던 수준이 지금은 함박 스테이크에 미트볼, 일본 규돈에 중국 기스면, 함흥냉면에, 김치도 이북식 경상도 식 종류별로 척척이다. 서툰 칼질에 피도 흘리고 곰국 끓이다 화상도 입었지만, ‘한 여인\'을 위한 맞춤 요리사가 된 것이다. “어머니도 정신이 돌아오시면 고마움을 표시하세요. “애비야, 고맙다. 맛있는 거 만들어줘서 행복해.” 그러면 너무 사랑스럽지요. 미울 때는 밤에 잠 깨울 때, 그리고 치매 등급 검사하러 온 기관 사람들 앞에서 얌전한 척, 멀쩡한 척하실 때에요. 외부인만 오면 영어도 일본어도 툭툭 나와요. “나는 똑똑해. 멀쩡해\" 이러시니 너무 얄밉죠. 내 엄마지만 부지깽이로 이마를 쪼사 버리고 싶다니까요. 하하.” 10년 동안 외박 한번 못했어요. 그런데 제 아내와 딸들이 지금 저를 “존경한다\"고 해요. 6개월이나 할까 했는데, 10년을 해낸다고. 손주들도 “할아버지 최고!\"래요. 물론 지독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린 적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달래왔다.
어머니를 모시게 하는 진짜 힘은 “나 아니면 누구도 해줄 수 없다”는 거다. 모든 걸 나한테 의지하는 이 한 여인을 제가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요양원에 보내드릴까, 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또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때론 다 놓고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성경의 에스겔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신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이길 수 있는 것만 허락하신다는 거죠. 다 놓고 싶은 마음과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갈등하다 결국은 사랑과 책임의 마음이 이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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